독서

표백-장강명[리뷰, 위대한 삶만이 가치있는가]

수리수리심술 2022. 12. 5. 21:02

▶내가 이 책을 공감하게 된 이유[되돌아 보는 내 과거]

 중학교 때 마음 한 구석에 늘 조바심을 두고 살았다. 누군가는 내 나이에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교를 자퇴하고 장사로 대성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 작은 학교에서 무얼 하고 있나. 같이 게임 하던 친구가 프로게이머 도전을 선언하면서 나는 더 다급해졌다. 실체 없는 열정이 마음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가만히만 있을래?'

 다급함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일탈로 바뀌었다. 새엄마와 살기도 힘들고 빨리 돈을 벌어야 겠다는 마음에 가출을 결심했다. 잠은 프로게이머 친구 집에서 자고, 싱크대용 음식물 처리 기계를 파는 회사에 면접을 갔다. 다단계 회사 팀장은 실적만 좋으면 여기저기 강의하면서 쉽게 돈 벌 수 있다며 달콤한 비전을 제시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영업은 힘드니 지인부터 공략하라는 조언과 잡스런 상술을 진지하게 알려줬다.

 나는 프로게이머 친구 어머니에게 제일먼저 영업을 했다. 어머님는 다단계를 눈치 채시고 절대 꼬임에 넘어가지 말라며 나를 단도리 했다. 그래도 잠시 동안은 판플릿을 전봇대에 붙여보기도 하고 가정집 문도 두드렸다. 고등학생 영업에 넘어갈 사람은 없었고 나는 얼마 못가 새어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첫 일탈에 실패했어도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지금 집만 탈출하면 무엇이라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여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곳이고 나가기만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때를 기다리는 동안에 책을 많이 읽었다. 주로 대기업 회장들의 자서전과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와 같은 책이다. '아침형 인간'을 읽을 때는 무슨일이 있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가정환경이 불운한 건 탓하지 않았다. 자서전 인물들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 계획대로 집을 나섰다. 망치백이라는 큰 가방에 옷을 주섬주섬 싸고 3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1층에 도착했을 즈음에 새 어머니와 아버지가 외출에서 돌아왔고 나와 마주쳤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어디가냐?"

 "잠시 친구네 다녀올게요"

 나는 태연하게 말하고 1층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두 번째 가출이라 떨리지도 않았고, 가로막힌다고 해도 다시 나가면 그 만이다. 프로게이머 친구내로 도망갔고 동네에서 가장 큰 횟집에서 일을 했다. 겨울이라 몸이 고됐고 어떤 날은 코피가 났지만 지옥같은 집보다는 덜 힘들었다. 불판에 옥수수 굽고, 기름 앞에서 튀기고,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다보니 백 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모였다. 나는 이 돈으로 꼭 성공해야 한다.

 반년 뒤 쯤 허름한 포장마차 하나 사서 떡볶이 장사를 했는데 무슨 동네 보안협회라는 곳에서 시비를 걸었고, 가스, 전기를 설치하는 일도 생각보다 복잡했다. 몇 개월 못가 보기 좋게 말아먹고 난 뒤 사회는 만만한 곳이 아니란 걸 처음으로 깨닳았다. 차선책으로 지원해 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학년을 마치고 장기 휴학계를 냈다. 주로 악세사리를 팔거나 전국 각지에서 옛날 과자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학교에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출을 이해해 준 아버지는 가끔씩 내게 연락을 하셨고 종종 내 인생에 관여했다. 특히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아버지 성화에 장사 커리어는 그곳에서 단절되었다. 억지로 졸업장을 넘겨받고 학사모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은 바보 그 자체였다. 전공에 대한 열정도, 다시 장사를 시작하자는 용기도, 예전의 유난이었던 자신감도 없어졌다. 병든 영혼과 함께 술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언젠가는 동네 고깃집 알바가 끝난 밤에 혼자 길거리에서 울기도 했다. 외제차 뒤에 숨어서 그랬는데 정말 서럽게 울었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상은 높으나 열정은 낮고, 자존심은 쌔나 자존감이 약해진 나는 체리필터 '해피데이'라는 노래를 자주 들었다.

 "찬란하게 빛났던 내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별로, 작은 일에도 늘 행복했었던...."

 평범하게 돈 벌기 싫었지만 일을 해야 했다. 맥주 한병 사먹으려고 칼질했던 저금통 속 동전은 마지막 재산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아르바이트 하기란 창피했지만 나는 지팡이가 되어줄 부모가 없어서 스스로 바닥을 딪고 일어나야 했다. 

 콩알만한 월급이라도 돈이 좋긴 좋았다. 술도 적게 먹기 시작했고 정신도 맑았다. 아침엔 자전거로 출퇴근 하고, 저녁엔 복싱장을 다녔다. 그리고 반 년 쯤 지나선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했다. 물론 전공을 살리진 않았고 조금이라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예를 들면 신문사 같은 곳이길 바랐지만 정식 기자를 하기엔 진입장벽이 높아 작은 잡지사에서 일했다. 부끄럽지만 인터넷에 내 글이 올라기기도 하고, 예전에 꺼져있던 열정이라는 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제 나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걸까'

 내가 위대한 일을 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지독한 게으름과 쉽게 찾아오는 권태다. 서울로 장시간 출퇴근 하면서 가방에 든 컴퓨터는 벽돌 같았고, 얼굴은 날이 갈수록 시커매 졌다. 나는 오로지 자고싶고, 먹고싶고, 쉬고싶다처럼 원초적인 욕구만 남았다. 불만의 끝은 언제나 직장과 나는 안맞다는 결론이다. 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사춘기는 끝나지 않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나의 적성은 무엇인지, 평범하게 사는 게 옳은 일인지. 가끔은 출근길 창동역에서 난민 떼거지처럼 계단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도 나같은 고민을 하면서 살까'라는 사색에 잠긴다. 

 일이 익숙해 질만 하면 자주 회사를 그만두었다. 비전이 없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이 아니라 직종까지 몽땅 바꾸었다. 출판, 유통, 건설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자 남들처럼 '청약통장', '적금', '작은 중고차'가 생기고 조금씩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다. 내가 거부했던 그리고 결별한 아버지가 늘 강조했던 '평범한 삶'에 굴복한 모습이었다. 무릎을 꿇고 올려다본 '평범한 삶'은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랐다. 의심하지 않을 땐 온화했지만 의심하면 냉정했고, 노동을 받치지 않으면 언제든 나를 발로 차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코 거역할 수 없는 크고 무서운 존재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지켜야할 가족이 생긴 뒤로는 의심할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갔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닮기 싫었던 아버지를 점점 닮아갔다. 사회를 맛보지 못한 여동생에게 '세상은 쉬운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꼰대같은 술주정도 배웠다. 이젠 정말로 사춘기가 끝나버린 것 같았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삶은 정해진 단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유아 시절의 무의식, 소년 시절의 맹신, 청년 시절의 의심 그리고 회의, 불신을 거쳐 성년시절의 평정에 이르고 다시 무의식으로 돌아간다. 나는 위대하게 살아야 한다는 중학교 시절의 맹신, 사회에 부딪치며 느껴온 회의, 그리고 안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평정 단계를 밟았다. 나는 철학자의 말처럼 돌고 돌아 소년 시절의 맹신에 다시 도착하면 어떻게 할까. 돌연 사업을 한다고 할까, 아니면 뭐라도 일을 저질러야 한다고 조바심을 낼까.  

 

▶표백에는 내 삶이 잘 녹아있다.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해야한다는 세연의 사상은 나에게 큰 공감 포인트였다. 내가 방황하던 시절 '표백'을 만났다면 어땠까. 아마도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소설 끝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전할지 궁금했다. 끝부분에서 휘영이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하기는 했지만, 주인공이 3년이라는 시간을 내걸고 변화한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